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고트 왕국 (문단 편집) === 전성기 === 게르만 연합군이 훈족을 격파한 후, 당시 동로마 황제였던 [[마르키아누스]]는 동고트족을 제국의 영내인 판노니아 지역에서 살도록 허락해 주었으며 식량을 지원하고 교류를 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마르키아누스가 죽고 [[레오 1세(황제)|레오 1세]]가 즉위한 후 이 지원이 중단되자 동고트족은 [[발라미르]]의 지휘하에 반란을 일으켜서 459~462년 일리리쿰 일대에서 약탈을 자행했다. 이에 레오 1세는 다시 동고트족에 대한 교류를 해 주기로 약속했으며, 대신 동고트 왕의 아들을 일종의 인질로 삼아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머무르게 했다. 이 인질이 바로 동고트 왕국의 전성기를 이끈 [[테오도리크 대왕]]이다. 콘스탄티노플에서 20년간 교육을 받은 그는 동고트인의 전사기질과 함께 동로마의 정치적, 문화적 식견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 되었다. 475년에 부친 테오데미르가 죽고, 481년에 라이벌인 테오도리쿠스 스트라보가 죽자 사실상 동고트족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가 왕이 된 직후 동로마 황제 [[제노(로마)|제노]]는 동고트족에게 제국의 골칫거리가 된 [[오도아케르]]를 토벌하고 이탈리아에 이주해 살라고 제안했으며 테오도리크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489년 오도아케르 축출을 위해 이탈리아 정벌을 시도하였으며 4년 만에 오도아케르를 굴복시키고 살해하였다.[* 오도아케르를 살해하고 테오도리크가 이탈리아의 패자가 된 493년이 좁은 의미의 동고트 왕국의 성립년도이다.] 테오도리크의 이탈리아 정벌은 공식적으로는 동로마 황제의 명령으로 행해진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양측 간의 [[이이제이]]와 [[동상이몽]]이 가득한 수싸움이 펼쳐졌고, 따라서 일단 정벌이 완료된 후 테오도리크는 동로마 제국과는 별도의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다. 테오도리크는 후에 '대왕'이라는 칭호를 얻었을 정도로 뛰어난 통치력을 발휘했으며, 군사적 정벌보다는 외교와 책략으로 동고트 왕국을 번영시켰다. [[프랑크 왕국]]과 [[서고트 왕국]]의 싸움에서 서고트가 일방적으로 밀리자 중재를 서서 서고트 왕국의 몰락을 막아주기도 했다.[* 511년에는 아예 서고트 왕국의 섭정왕이 된다. 당시 서고트 왕이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